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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과 주사(舟師) 강화론 1592년에 발생하여 7년간 지속된 임진왜란은 국가적으로도 큰 충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산해의 삶과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고 관직인 영의정 시절 발발한 임진왜란 때 이산해는 선조의 파천을 주장했고, 선조의 어가가 개성에 머물렀을 때 국왕의 파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산해는 중도부처의 길에 올라 강원도 평해에서 3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이산해는 선조 시절 국가 원로로서 전쟁을 대비하는 군국(軍國)의 방책을 여러 차례 개진하였다. 임진왜란을 경험하면서 조선의 주력 함대인 판옥선이 전쟁의 승리에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을 지적하는 한편, 주사(舟師)의 양성을 강조하였다.
대체로 판옥(板屋)으로 된 거함이 바다를 가로질러 있으면 출렁이는 파도를 육지처럼 여기고 요동하기 어려운 것이 마치 산과 같아서 적의 뾰쪽한 배나 작은 배로는 대적하지 못합니다. 신포(神砲)와 비포(飛礮)는 소리가 천둥을 치는 것 같아서 한 발에 적의 배를 파손시키고 바다를 피로 물들게 하니, 적의 단총(短銃)과 편환(片丸)으로는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적이 믿는 것은 칼인데, 서슬이 퍼런 칼날로도 파도를 따라 출몰하는 즈음에는 쓸모가 없으며, 아군의 우려되는 점은 무너져서 흩어지는 것인데, 일단 배에 오르게 되면 겁쟁이나 나약한 병졸들도 모두 필사적으로 용기를 냅니다. 이런 것이 모두 배에서는 유리하지만 진마(陣馬)에서는 불리합니다. 우리나라가 수전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夫板屋巨艦。橫截海面。視波若地。難撼如山。則賊之尖舸小船。不能當也。神砲飛礮。聲震雷霆。一發破船。腥血漲海。則賊之短銃片丸。不能格也。賊之所恃者刀劍。而雪鍔霜刃。無用於隨波出沒之際。我軍之所患者潰散。而一登船上。則怯夫懦卒。皆奮必死之勇。是皆利於舟楫。而不利於陣馬。所謂我國之長於水戰者。此也。] - 『아계유고』 권5,「진폐차」
이른바 전선(戰船)이란, 오늘날의 판옥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제도가 정교하여 더위잡고 오를 수 없을 만큼 높고 깨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며 대중을 수용할 만큼 넓고 적을 방어할 만큼 많은 인원이 탈 수가 있으니, 참으로 수전하기에는 좋은 기구입니다. 그러나 공력이 가장 많이 들어서 배 하나를 만들자면 큰 집 한 채를 만드는 것과 동등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에 비록 마련하기가 어려울 듯하지만, 선재(船材)와 선판(船板)을 다른 지역에서 먼 곳까지 싣고 올 것은 없습니다. 남쪽 지역 섬들에는 소나무가 무성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비록 아침마다 베어내더라도 다 베어낼 수 없을 만큼 많으니, 허다한 선장(船匠)으로 열 사람씩 대오를 편성하여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공역의 과제를 준다면, 신속하게 만들어내지 못할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형체가 너무 크고 격군이 너무 많기 때문에 쉽사리 충당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평상시에도 액수가 많지 않았는데 더구나 난리를 겪고 나서는 배가 1백 척이 되지 않고 군사도 배에 차지 않으니, 이런 정도로 적을 방어하려 들면 서로 잘 들어맞지 않는 것이 심하지 않겠습니까. 신의 견해로는 좌우 양영(兩營)에서 각각 수백 척의 배를 만들어서 그것을 삼등분하여 둘은 판옥선으로 사용하고 하나는 중선(中船)으로 사용하되, 중선도 전구(戰具)를 갖추어 가지고 후원이 되어 진퇴를 신속하게 하면서 돌격을 대비하게 하는 한편, 일이 없으면 식량을 운송하는 데 이용하고 일이 있으면 전투에 협조하도록 한다면, 어찌 한 번의 거사로 두 가지를 얻는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所謂戰船者。今之板屋。制度精巧。高不可攀。堅不可破。廣可容衆。衆可禦賊。誠水戰之良具也。第以功力最鉅。造一船與造一大家等。旬月之間。雖若難辦。而船材船板。不必遠輸他境。南中諸島松木之茂密者。處處皆然。雖朝朝而伐之。罔有窮極。以許多船匠。什什成伍。立其程限。課其功役。則無患其不速就矣。但其形體過大。格軍過多。未易充定。故平時亦數額不多。而況經亂之後。船不滿百。軍不滿船。以此禦賊。不亦齟齬之甚乎。臣意左右兩營。各造數百船。而三分其數。二爲板屋。一爲中船。中船亦備戰具。以爲後援。或進退如飛。以備突擊。無事則用以運糧。有事則用以助戰。豈不一擧而兩得乎。] - 『아계유고』 권5,「진폐차」
이산해는 이어 수전의 승리를 계속 이어가고 왜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주사가 가장 급선무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개진하였다.
주사는 진실로 우리나라의 장점이므로 예비를 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서둘러야 할 급선무입니다. 장기라는 것은 명분이며, 예비를 한다는 것은 실상인 것입니다. 만약 명분만 믿고 그 실상을 버린 채로 일찍이 판옥선 한 척 만들지 않고, 수졸(水卒) 한 명 더하지 않고, 양장(良將) 한 사람 선발하지 않고, 수전 한 번 연습하지 않은 채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며 앉아서 패배하기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장기를 가지고 있다.”라고 한다면, 어찌 그것을 장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원균이 처음 명을 받았을 때에 선척의 수가 비록 1백여 척이라고 하였지만, 그중에서 이용해서 적을 제어할만한 배는 6, 70척에 차지 않았습니다. 원균이 패배한 후 이순신이 흩어지거나 불에 타 버리고 난 나머지를 수습하고 보철(補綴)하여서 겨우 30여 척의 배를 얻었습니다. 이 밖에는 모두 쓸모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주사가 실상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의견으로 예비책을 총괄적으로 말씀드리면, 영남과 호남 사이에다 주사를 담당할 두 개의 영을 별도로 설치하고 군병, 주즙, 궤향, 기계 등에 관한 일을 두 도로 하여금 나누어 관장하도록 하되, 영남의 물력이 부족하면 영동에 있는 것으로 보충하고, 호남의 재정이 부족하면 호서에 있는 것으로 협조하게 해서, 관방의 형세를 장엄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그 대책을 나누어서 조목별로 말씀드리면, 전선과 수졸과 군량과 장사를 들 수 있습니다.
[舟師。固我國之長技。而有備。乃今日之急務也。長技者。其名也。有備者。其實也。若恃其名而遺其實。未嘗造一板屋。添一水卒。選一良將。習一水戰。而荏苒歲月。坐待成敗。曰我有長技云爾。則烏在其爲長技也。況元均之初受命也。船之見數。雖曰百餘。而其中可用以制敵者。不滿六七十。元均之敗也。李舜臣收拾補綴於散亡灰燼之餘。僅得三十餘船。外此者。皆無用矣。今之舟師。可謂有其實乎。臣意統言有備之策。則別設舟師二營於湖, 嶺之間。軍兵舟楫。餽餉器械等事。令兩道分掌之。嶺南物力之不足者。以嶺東補之。湖南財用之不足者。以湖西助之。以壯關防形勢。可也。分言其目。則曰戰船也。曰水卒也。曰糧餉也。曰將士也。] - 『아계유고』 권5,「진폐차」
위 자료에서는 이산해가 명분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면모가 잘 드러난다. 즉 ‘명분만 믿고 그 실상을 버린 채로 일찍이 판옥선 한 척 만들지 않고, …….’ 등의 발언에서는 실용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구체적인 대책 수립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산해의 경제사상과 현실대응론은 상당히 구체적인 것으로서, 전란 직후의 민생피폐와 재정의 궁핍을 타개하기 위해서 나온 측면이 많다. 학문의 연원을 살펴보면 서경덕에게서 연원하여 이지함에게서 두드러진 실용적인 학풍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면모는 이산해를 비롯하여 김신국, 유몽인 등 조선중기 관료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관료적 기반을 지닌 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조선사회를 보다 폭넓게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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